150701_모노노케를 보고- 애니

0.
2007년 3분기. 노이타미나 방영. 제작사는 토에이 에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 출신에,
소울 테이커, 츠리타마, 갓챠맨 크라우드 등등 연출의 나카무라 켄지.(의외로 경력이 단출하다)
이 감독이 사쿠라이 타카히로(약장수) 성우를 항상 데리고 다닌다고.
캐릭터 디자인은 하시모토 타카시.



1.
너무 대단한 작품이었다.

첫화부터 나를 사로 잡은것은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연출력.
번잡하지 않게 정적을 완벽하게 활용하면서
보는 사람이 배우들의 대사를 듣도록 빨아들인다.

그것을 위해서 영상은 어설픈 정밀묘사, 모에함을 과감히 버리고
무심한듯, 배려없는듯,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을 척척 던진다.
마치 어깨힘이 좋은 투수와 캐치볼을 하듯이
관객은 그 툭툭 던지는 공에 온 신경을 기울여 받는데에 집중하게 된다.
그 공의 궤적이 조금만 바뀌어도 민감하게 느끼고 그 의미를 찾게 된다.
한장면 한장면을 충실히 감상하게 된다.
이게 연출력이 좋은 감독의 작품인가...

무심한듯 툭툭 지나가는 화면의 구도와 연출들이
파격적이면서도 색감과 형태가 아름답다.
좋은 영상은
그 작품의 의미를 더 부각시켜주고,
작품의 클라이막스에서 더 몰입하게 해주고,
작품의 호흡이 느린 부분에서는 관객에게 작품 외적인 충족감도 준다.



2.
성우가 또 기가막혔다.
약장수 성우 목소리 너무 멋짐...
전반적으로 다른 캐릭터들도 성우들의 연기력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데에 큰 역할을 한듯.
정적을 충분히 활용하고,
일상적인 대사가 적고
몇마디에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거나
대사 이외의 발성들로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감독의 연출에 맞게 정말 잘 연기한것 같다.

또 사운드트랙이 좋은 점을 빼놓을 수 없겠다.
오프닝은 경쾌하고 박진감있게,
하지만 옛스러움이 살아있는 반주에
표현력 좋은 보컬로
유랑하면서 모노노케를 베는 삶을 사는 약장수가 약장수가 겪는
여러가지 인세의 에피소드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피소드가 마무리되고 흘러나오는 엔딩도
작품의 내용, 사람의 죽음과,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내면의 왜곡을 다루지만
그 근저에 깔려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잘 녹아있었다.



3.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야기의 전개하는 디테일이다.
전개방식도 좋지만,
여기서는 전개방식보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스토리라고 할까,
설정의 디테일이라고 할까
크게 보면 그저 그런 퇴마물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중간중간 중요한 분기점들을 정확하게 잡아주면서
인간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과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승화시켰다.

가장 중심이 되는
모노노케의 형태와 내력과 까닭을 알아야 벨 수 있다는 설정이 일단 좋았다.
검이 베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검이 날카롭기 때문에 벨 수 잇는게 아니다.
검은 도구일뿐,
베는 것은 마무리일뿐,
대상에 대한 형태와 내력과 까닭을 알아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형태와 내력과 까닭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안다는 것이다.
세속계의 모든 것은 연기로 이루어져 있다.
(세속계의 정의부터가 연기에 의해 파생된 것들이니.)
얼마나 연기를 깊이 아느냐가 사람과 사물을 읽는 통찰력인 것이다.
형태라는 것은 물질적인 연기,
내력이란 것은 관계 속의 연기,
까닭이란 것은 인간 마음 속의 연기.
사실은 이 세가지 이상의 무슨 원인이 존재하며 무슨 결과가 존재하겠는가.
이 설정부터가 깨알같지만 정말 중요한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 세가지 연기를 파악해야만 칼을 뽑을 수 있다.
칼을 뽑는다는 의미를 한버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내 생각에는 검으로 베어버린다는 부분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진짜 칼을 뽑아서 진짜 베어버리는 장면으로 연출하고,
또 마지막에도 모노노케를 근절할 수는 없지만 베어버릴수는 있다고 호언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과의 연이란 그렇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라마사에서도 강조하듯이
검으로 끊을 수 있는 인과는 없다.
검은 다만 생명을 끊어낼 수 있을 뿐,
그를 통해 더 많은, 더 강한 인과를 맺어낼 뿐이다.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뉘앙스로 볼 때
칼로 벤다는 의미가 척결하고 심판한다는 의미라고 보기는 어렵다.
칼에서만 의미를 찾지말고 인과를 파악해야만 칼이 뽑힌다는 설정 자체를 하나로 이해하면
모두 이해한 후에 칼로 벤다는 행위는
문제의 왜곡을 풀어내고 그 연기가 흐르는대로 흘러가게끔 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약장수가 모노노케와 그 원한에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무리하는 방식이
아무도 새로 죽는 사람이 없다.
우미보즈에서도 자기 욕심에 굴복하고
누이를 다른 남자에게 주기 싫은 질투심에 굴복하고
더욱이 자신의 마음이 그런지도 깨닫지 못한채 발버둥치고 있는,
자신이 들어가야할 우츠로부네에 누이를 대신 들어가게한 중을
처단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무지만을 베어낸다.
오히려 중은 평안함을 얻는다.
모노노케는 누이의 원한이 아니었다.
중의 마음속에 있는 무지였을뿐.
구체적인 해결책은 따로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순간
모노노케는 해소된다.

달걀귀신 에피소드도 한 여자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전개가 너무 좋았고
누에 에피소드도 죽은 자에게 죽음을 깨닫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반전이 너무 좋았다.
다른 에피들과는 다르게 화묘편은 전개의 얼개가 좀 엉성하지만
어설프게나마 추리물의 방식을 차용하느라 그랫던듯.
그래도 빛이 났던건,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스코에게
어찌보면 사람으로는 하지 못할 짓
(혹은 사람으로서 그럴수도 있는 짓)
을 한 사람들을 모아서 그렇게 괴롭히고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어 놓았지만,
열차에서 나와보니 모두 살아있었다.

강한 원한이 있었고
그 원한이 있게한 인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인과들을 죄로써 다루고 처벌할 수 없는 것은
그 인과들을 있게한 인과들이 또다시 얽혀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죄라고 단정짓고
무엇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연기의 바다속에는 죄인이란 없다.
죄라고 단정짓고
부당하다고 가슴치는 중생만이 있을뿐.

모노노케가 있게된 이유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과 경찰과 편집장과 우유배달부와 카페점원과 기관사가 나쁜사람이어서 모노노케가 된 것이 아니다.
원념은 어떻게 생겼는가?
인과때문에 생겼는가?
그렇지 않다.
원념은
인과를 보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를 밝히고 보여줌으로써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일 수 없는 것이다.
인과를 바꿀 정당성이 모노노케에게는 없다.

약장수는 언뜻 모노노케의 원한을 들어주고 풀어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모노노케가 보지 못했던 사건의 형태,
모노노케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노노케 스스로의 마음의 형태를
모노노케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체로 사건의 형태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마음의 형태는 모노노케에게 보여주는듯 ㅋㅋㅋㅋ)

모노노케를 어설프게 미지의 현실적인 실체로 그리지 않고,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에 의한,
사람의 마음의 한 모양이라는 것을 너무나 정확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잔인해 보이는 연출에도 거부감이 적고
(결국 다 살아나거나 원래 죽어있는 경우가 많음)
괴기스러운 연출에도 따뜻함이 있다.
(고양이 개귀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4.
리뷰를 하면서 더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한 작품인듯.
별 네개를 주려고 한다.
왜 이렇게 칭찬 일색이어놓고는 별 네개반을 주지 못하는가....
에 대해선 나도 명확히 모르겠는데
뭐랄까
재미가 좀 없다.
캐릭터
성우
음악
스토리
전개
연출
영상미
다 잇는데
뭐랄까 좀 마니악한 주제라고 할까
아무나에게 추천하기 좀 꺼려진다.
또는 아무 생각없이 보기엔 조금 부담스럽다.

분위기 있는 작품을 보면서 개그물이 아니라고 트집잡는거일수도 있지만...
뭐 내 마음이 그런걸.

최고였지만
네개반은 좀 꺼려진다.
네개 탕탕!
(네개도 얼마만이냐...)

mononoke.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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