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친은 가텐계......를 하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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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사 이후
다시 명작 추천으로는 마브러브와 에버17을 설치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신적으로 그런 대작을 다시 달리기엔 현실의 부담에 짓눌려 있을 때쯤,
그냥 쉽사리 손이가는걸 구하다가 받게된
'내 여친은 가텐계........'
라는 긴 제목의 게임.
이건 설치도 필요없고
따라서 언어설정변경이나 그를 대체하기 위한 유틸사용도 필요없고
아랄 준한글화도 되어 있어서 따로 어려운 번역투의 문장에 시달릴 일도 없다.
완전히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다.
일단 게임 외적인 스트레스가 제로라는 점에서 매우매우 가산점.



1.
처음에는 잔잔하고 뻔하게 진행되다가
점차 긴장감을 올려간다.

자세한 후기는 하면서 적은 메모장으로 대체.



2.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와닿앗던 부분은
먼저 시오바라의 왜곡된 성욕에 대한 부분.
작품은 그의 성향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려주어서
나는 그 성욕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다.

그는 그의 아내와 접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아내와 다른 사람이 하는 꼴을 보아야만 흥분을 한다.
그는 평생 그녀의 죄를 물으며 그녀에게 성적 학대를 가한다.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과 아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으면 소외감을 느낀다.

나는 이것이 편관의 왜곡된 성욕이라고 느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아니할 줄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옳고 그름은 그만의 옳고 그름이라 남들고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이 아내와 내밀한 관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억지로라도 그의 천칭에 그의 아내를 얹어 놓고 정의구현 놀이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의 아내를 부정한 여자로 취급하는 것이 진심이 아닌 것은
나오가 다른 남자와 자는 부정한 모습에서 흥분하는 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놀이와 유흥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사회적 제약을 초래하는 비즈니스가 되어버린다.
회사에 갈때 양복을 차려입는 것처럼, 그는 이 비즈니스에서 나오의 몸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자신이 부정을 혐오한다는 설정에 충실해진다.



3.
의외로 악의 축이었던 아이다의 캐릭터는 별로 흥미로운 논쟁점이 없었다.
그냥 사건을 전개하기 위한 설정캐 느낌.
왜냐하면 그처럼 찌질한 사람이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존재인 미사키의 심리를 완벽하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마사시의 의지 밖에서 미사키가 농락당한다는 전개를 위한 설정일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자신과 다른 존재,
자신에게 없는 글자를 가진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사람과 스스로의 페이스로 관계하는 것은
정말 자기 확인이 잘된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렇게 장기간동안 한 존재를 옭아맨다는 것은 말이야 쉬울지 몰라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4.
오히려 그보다는 미사키와 나오를 통해 보여주는
NTR에 빠져드는 그녀들의 과정이 이 작품에서는 너무 명료하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하게 달라붙는 남자들에게 약하고
약한 모습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우는 남자들에게 약하고
그리고 자신들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들에게 약하다.

이 작품에서는 그녀들이 '인성'에 의해 이성의 굴레를 넘어
감정과 육체의 관계로 천착해간다고 얘기한다.
질척하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남자들,
그런 남자들은 하나같이 정에 굶주려있다.
이런 남자들에게 그런 성향의 여자들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남자들이 마치 이성적으로 계산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점이다.
그런 남자들은 삶 자체가 그렇다.
그들 스스로도 그러한 질척한 관계 속에서 정을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관계의 상대방을 농락하기 위해 그런 식의 행동을 하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마사시도 울고 나오의 선배도 울지만
특히 아이다는 정말 묘사가 잘못된 것 같다.



5.
이제 진짜 주제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마사시를 살펴보자.
작품은 그가 이러한 질곡속으로 들어오는 분기점이
그가 편의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들에게 빙글빙글을 하면서 가슴을 비비는 걸 상상하는 장면이라고 본다.
(그가 흥분하지 않으면 챕터2에서 게임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제기랄 이거때매 몇시간을 날린거야)
여기서 그가 화가나는 와중에도 흥분한다고 하면 그에게는 금단의 문이 열린다.
(실제로 문이 열림 ㄷㄷ)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린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그 문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열쇠를 찾아서 빠져나오는 과정이다.
(대부분 정신 못차리고 허둥대다가 배드엔딩을 맞이하지만...)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그렇다고 그가 애초에 그 문을 열지 않으면 행복한가? 하는 질문을
작품은 굳이 한번더 던진다는 것이다.
그는 흥분하지 않았지만, 아이다 일행의 일방적인 음모로 인해 미사키가 강간을 능욕을 당한다면,
그는 미사키를 마음에서 버리고, 쿠로카와, 친넨, 시오바라, 나오와 미사키와 함께
막장 난교파티 라이프 엔딩을 맞이하지만
그의 마음은 미사키를 잃었다거나 비정상이라는 문제인식 보다는
그저 멍한 충족감에 사로잡혀 있는다.
END

그가 문을 열지 않는다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왜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그가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
그가 문을 흥분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그의 진정한 마음에 눈을 뜨는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가 어떤 도덕적인 이유때문에 그의 마음에서 눈을 돌려서
그의 마음 어느 한 부분은 깨어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그로서는 미사키와 사랑을 나눌 수가 없다
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작품은 마사시를 어떤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일단은 관계속에서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상관x)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판단이 존재한다. -> 나오를 바라볼때의 죄책감(편관)
미사키에게 정을 요구하고 그녀의 마음씀에서 대단히 충족감을 느낀다. (편인)
(미사키가 마음써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강렬한 배신감에 시달린다) (편인)
계략이나 흉계의 파악에 둔하다. (정재x)
그러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다. (정관)
자기 고집이 강한 것 같지도 않다. (비견겁재x)

정리하면,
정관 편관이 있고
정인은 모르되 편인은 있으며
상관은 없으되 식신은 있을수도 있다.
재는 편재든 정재든 없어보인다.
비견 겁재도 둘다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편관편인의 성욕이 있다.
편관의 성욕은 시오바라의 성욕,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에서 느끼는 충족감.
그 감각은 편이 오롯이 편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쾌감인지도 모른다.
쨋든 그에게 있는 편관편인의 욕구를 부정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는 영원히 겉도는 삶을 살 뿐이다.

사실 아이다의 사건 없이 가만히 놔뒀으면
마사시와 미사키는 마사시 나름의 페이스대로
편관편인의 편편한 사랑을 해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게임에선 미사키가 정관정인의 화신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생활이 미진했다고 하더라도 미사키가 가정을 깨는 일은 없엇을 것이다)
그러나 혹여 편관편인의 마사시는 정관정인의 미사키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결혼생활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의 편관편인의 성욕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이 일련의 이야기는
그와 그녀의 가정생활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성장촉진제 같은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는게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6.
생각지도 못하게 와닿앗던 부분이 있다.
성적으로 열등감에 젖어 있는 마사시와 관계를 하면서 나오가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부분.
섹스에 자지 크기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육체적인 자극도 물론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자극도 그만큼 중요하다.

이말에서 내가 왜 몸서리치게 놀랐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잘 안간다.
성적으로 열등감에 빠져있던 마사시에 나도 몰입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편관으로서는 그런 관계적인 부분은 막연하게 이러겠거니 하고 남들의 생각을 빌리는 일이 잦다.
여자들은 큰게 좋겟거니
육체적인 관점이나 물리적인 관점에서 봐도 큰게 더 큰 자극을 줘서 쾌감을 더 줄 수 있을 것 같아.
더 오래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더 큰 쾌감을 주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건 이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군.
근데 나는 크기도 작고 조루네
이건 뭐 성격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아무리 합리화를 해도
더 우월한 신체적인 남자 앞에선 적어도 성적으로 여자에게 덜 매력적이란 '사실'을 인정할수밖에 없어...
이렇게 태어난 몸이 문제지...흑

선택지1 육체를 개조한다.
선택지2 열등한 자신을 인정하고 짜져 지낸다.

대략 이런 합리성으로 덕지덕지 점철된 스스로의 논리 속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섹스에서 반드시 질대 고추로 쾌감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사실은 정한 사람은 없고 심지어 그렇게 정해진 것조차 없었던 것이다.

편은 관계를 막연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라고 설정한다.
사실은 그런 막연한 무언가는 없다.
그냥 할 뿐이다.
관계를 잘하는 사람은 막연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서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는 사람이다.
막연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그 자체가 편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으로,
정인 사람들은 사실 편의 그런 사고 방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의 그러한 사고 방식에 태클조차 걸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 있을거라는 그 생각을
관계에서는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관계에서는 무언가 의미있지 않더라도 괜찮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냥 관계를 하는 것.
그것이 편이 관계에 가지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이다.
아니,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정확히 자기 자신만큼 강한 로프의 매듭을
마술사처럼 단숨에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의 열등감이 나 스스로가 부여하고 있던 거라는걸.
나 스스로가 우월을 설정하고 나를 열등이라고 치부했다는걸.
(혹은 반대일수도 있지만, 그 경우에는 열등 취급을 당한 상대방의 태클로 피드백의 기회가 존재한다)
섹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흥분코드를 찾고, 그걸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란걸.

오늘에야 몸속 깊이 깨달았다.

진짜 아차 하고 잠에서 깬 느낌이다.




7.
굳이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밤에 잠을 안자는 나는
나에게 있어서 대단히 부끄러운 그림자 같은 거였다.
그것은 그러면 안되는 일이었다.
육체적으로 커다란 악영향을 낫는다는 측면에서나
정신적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나
그것은 '옳지 않은'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해도 변명하지 못해 화만을 낼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이었다.
거기에다 그 시간에 자위라도 한다치면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은 극단적으로 커져서
정상적으로 우리 자기와 얘기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하지만
그럴게 아니었다.
그냥 그게 나다.
관계 속에서 옳은 나로 포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거다.
그게 옳지 않다는 나 자신의 고정관념을 벗어라.

누가 입혀놓은지도 모르는 작은 옷을 입고는 자라나는 내 몸을 죄스럽게 여기고 있다.
옷을 벗어라
사실은 입고 있지도 않은건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양복을 입고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봐라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마사시가 흥분을 느끼면서 해피엔딩으로의 첫발을 내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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