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15_her를 보고 영화

0.
2014년 5월 개봉. 감독은 Spike Jonze.
주연은 Joaquin Phoenix, Scarlett Johansson 목소리.
126분.


1.
와 좋았다.
가장 먼저 인상 깊은 부분은 영상미. 영상의 톤과 배색을 이용한 화면 구성이 완전 일품.
몰입을 유도하고 주제를 강조하는 담백한 음향도 일품.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강점은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흔들리지 않는 명료한 주제의식(문제의식).
감독의 하고 싶은 얘기가 분명한 점이 매우매우 좋았다.
덧붙여 쉽지 않은 감독의 초점을 정확하게 표현해낸 호아킨 피닉스씨의 훌륭한 연기도 매우매우 좋았다.
와우 훌륭한 영화였어.
내일 인터스텔라를 볼거지만 이 영화가 더 훌륭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을 억누르기 힘들다.



2.
일단 감독의 포인트는 모두 테오도르에 담겨있다.
테오도르는 매우 강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또 대인관계에 있어서 겉치례라는 껍데기를 벗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변태왕자와 웃지않는 고양이와 그 문제의식이 매우매우매우 흡사하다)
그의 삶은 그 겉치례로 인해서 매우 부드럽고 윤택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겉치례 때문에 자신을 관계속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어느 순간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자기 동력을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서로를 투영해야하는 연애관계는 물론 파국으로 흐르고
남아있는 윤택한 삶속에 진정한 자신을 봐주는 사람은 없는 외로움에 빠져버린 테오도르.

그에게 닿은 인연이 바로 OS라는 설정의 인공지능이다.
애초에 인공지능의 한계는 주어진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도구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이 인공지능은 인간의 특성을(주로 내면적 특성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해서
사용자 개개인에게 최적화한다는 설정이다.

소개팅에 나가서도 부드럽게 관계하다가도 조금 관계가 깊어져서
상대가 테오도르 내면에 대해 물어오자
테오도르는 또다시 연인 관계에 실패하게 된다.
테오도르는 또다시 외로움에 빠지고
그는 그를 정확하게 봐주고, 그가 상대방과의 매끄러운 관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인공지능과의 관계가 자신에게 부족한,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대인관계의 그 어떤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켜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점점 굳이 물리적인 몸이 없이도 연애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테오도르와 인공지능은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는데
현실적 장애물을 교묘하게 피해서 대리 성관계를 가지려다가 실패하면서
테오도르와 인공지능의 관계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빠르게 성장하는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테오도르는
다시 그 불편함을 겉치례로 덮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자신이 자신을 가리면서까지 소중히 해오던 관계의 상대방이
사실은 동시에 수천명의 사람과 관계를 하고
동시에 수백명의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겨우겨우 기워서 유지하던 그의 멘탈은 완전히 깨져버린다.
그리고는 옆 집에 사는 에이미와 손잡고 옥상에 올라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본다.



3.
영화내내 감독이 은근슬쩍, 그러나 분명하게 짚어주는 부분은 이거다.
잘나가고 대인관계에 '착한' 테오도르가 대인관계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가 관계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한 전 부인과 소개팅녀가 사이코패스라서 좋은 남자한테 트집잡는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이 겉치례에 자신을 맡기는 테오도르에게 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가 갖는 관계는 전부 유사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감독은 교묘하게 그러한 겉치례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이 겉치례라는 것 자체가 대인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테오도르가 '인식하지 못한채' 겉치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대화의 틀, 대인관계의 규칙, 에티켓으로 드러나는 '정관'의 가치를 감독은 알고 있다.
다만 감독은 자신의 정관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테오도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테오도르가 외로운 또 한가지 이유는
그가 가진 '편인'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인간적인 정이라는 것은
직접 만나고 물질적인 접촉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느 정도 몰입만 된다면 가상의 인간과도 충분히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폰섹도 가능한 사람이다.
(물론 이 부분은 그의 편재적인 감각도 함께 작용해서 이루어지지만.)
더불어 그가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상황에 이입해서 원하는 대상에게 전달할 마음을 상상하고 구성해서 전달하는
편지 대필업무인 점에서 다시 한번 그의 강한 편인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그의 강한 '재성'도 보여주는데
그가 가진 재산이나 유복한 점, 목소리로 자신의 생활을 모두 관리하는 그의 시스테믹한 모습들은
정재와 편재가 장애없이 복합적으로 활용되는 모습인 것이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인간의 한 특성을 작품내에서 직접 구체화해서 인공지능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그를 이용해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
즉 식신적 인물로 그려진다.
덧붙여 인공지능은 테오도르의 특성에 맡게 편인적인 측면이 강해서
그에게 필요한 편인적 교류를 아주 섬세하게 나누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몸이 없어서 멘붕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에서
감독은 이 인공지능이 테오도르와 아무리 일체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다른 글자를 갖고 있는 하나의 사람(8자를 가진)임을,
자신의 불완전함에 부딛쳐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캐릭터이지
전지전능한, 혹은 알고리즘에 불과한 그 무엇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테오도르는 꼭 인공지능이 아니어도
충분히 인공지능과 같은 글자를 가진 사람을 어디선가 만날 수 있었다.
인공지능과 테오도르가 헤어진 이유는 물리적 신체가 없어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테오도르에게는 없는 '정인'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이 몸을 갖는데에 성공한다는 설정이 있었어도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인공지능, 자신의 고민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인공지능과의 관계 속에서
테오도르는 다시 단절감을 느꼈을 것이고,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테오도르가 근본적으로 변한 점이 있다.
다 좋고, 육체적 관계의 제한이나, 연락을 받지 않는 인공지능을 접했을 때의 자신의 감정을 통해서
테오도르는 자신이 인공지능과 진짜 연인관계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만
바로 그 직후, 인공지능과의 관계가 자신과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부분.
이 부분에서 그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자신 내면에 강렬한 무의식적인 바람이 있었음을 인식한다.
자신은 이 유일한 관계가 소중했던 것이다.
자신은 자신이 이 관계를 타인에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은 자신이 이 관계를 갖기 위해서 자신의 바람을 숨기고 '겉치례'를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관계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실망을 넘어서 배신감에 눈물 흘리는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관계에 어떠한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옭아 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정관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앞으로 관계를 해나갈 수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이 호전되어서,
어떤 좋은 인연이 닿아서 그의 대인관계가 발전하고 연인관계가 쌓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왜곡되어 있던 자신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고유함을, 특성을 담아내는 진정한 관계를 해나갈 수 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 옆집의 에밀리와 테오도르가 조용히 함께 옥상에 올라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에서
그의 대인관계의 깊이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그녀와 만나기 위해 어떠한 겉치례도 하지않고
멘붕한 그의 모습 그대로를 그녀에게 보여주었고,
옥상에 올라가자고 요구했고
아무 기약도 약속도 없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가 갖고 있던 대인관계에 있어 경직된 태도, 습관들을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정확히 이 지점이었음을 짚어준다.
정확히 이런 결말이 아니었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연히 이런 결말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확신,
나아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는 명료한 전달을 받을 수 있었다.



3.
아무래도 편이 많은 테오도르는 애당초 활발한 인간관계에서 충족감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아마 깨달음 이후에도 그렇게 이전과 다르게 활발하게, 다양하게 대인관계가 넓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돈오점수라고, 점점 관계를 계속해 나가면서
자신이 그렇게 소중히 했던 관계들, 그렇게 자신을 억누르면서 매끄럽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그 관계들을
자기 스스로가 원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자신의 글자중에 편이 많음을 알아갈 것이다.

편이 많으면 외로운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편이 많다는 이야기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정이 많은 사람들은 홀로 있지 못한다. 다시말하면 관계속에서만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편인 사람들을 그렇지 않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관계들이 이 들에게 소중한 충족감을 주며,
그것은 비록 관계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테오도르가 외로움을 느꼈던 이유는 오히려 자신에 맞지 않는 관계를 맺고 있음에서 오는 자기소외 때문이다.
소외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인위적인 행위이지
객관적으로,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4.
요즈음 그렇게 많이들 말하는 '행복'이란 별게 아니다.
자신이 가진 글자대로 살아가는 삶, 다만 그것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글자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만 자기 자신의 착각과 무지일 뿐이다.
왜 자기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으면서
자기 자신이 아닌 선택지를 고르는가.
어느 누가 어떤 채찍을 들고 위협해도, 어떤 당근을 주면서 설득해도
왜 그건 내 삶이 아니라서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는가.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한채 주어진 습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습관에 갇혀버리면, 아예 자신에게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도 보지 못한채
요구되는 선택지만을 고르며 인생을 살아간다.
바로바로 테오도르가 살고 있는 삶이다.
테오도르의 삶은 비단
윤택한 부르주아의 연애 실패담을 보여주려는게 아니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선택지를 분별없이 선택하며 살고 있는
'불행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답을 명료하고 친절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불행은 네가 만들고 있다.
네가 무의식중에 내면화 해버린 '웃는 얼굴'이 과연 너에게 맞는 것이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관계를 해라.
배려는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는 것이다.
네가 하는 배려는 과연 조심하는 것이냐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냐?

결국 감독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인간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5.
아 좋았다.
내용의 깊이도 깊이고 취향도 취향이지만
그것을 풀어낸 연출력, 즉 영상 음향 전개논리 전개속도 모두다 좋았다.
두시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했다.
별 네 개짜리 영화가 또 나와버렸다.
감독 짱짱맨.


p.s.
물론 현실적으로 저런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컴퓨터는 바보다. 계산의 대가라는 컴퓨터가 10^(-10000)도 계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맹점을 짚어준다.

알고리즘은 그 스스로 저렇게 '인간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능숙히 사용해야한다면
그 복잡한 프로그램의 원리를 알아야만 한다.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는 만큼 컴퓨터는 나에게 보여준다.
컴퓨터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인간을 비추는 거울은 될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반에 보여준 배려깊은 모습, 심리치료 목적의 프로그래밍은 가능하다.
최고의 심리치료는 자신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프로그래밍 한다면 사용자를 그대로 비춰주는 컴퓨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모습에서
앞으로 심리치료용도로 컴퓨터가 적극 활용될 여지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컴퓨터가 사용자와는 별개로 삐지고 욱하고 질투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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