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 관람 후기(초고) 영화




0.
처음엔 그냥 '원스 같은 영화인데 좀 덜 졸림' 이란 말 듣고 보러 간거 였다.
뭐 음악 영화는 왠만하면 나쁘진 않으니까. 평도 안나쁘니 금상첨화 라는 생각 정도.



1.
자소서를 읽는게 일인 사람들은 처음 세 줄만 스윽 보고는 더 읽을지 안읽을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게 옳다 그르다는 따지는 것 보다도, 요즈음 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한 대상의 가치를 알아보는데에 그 이상의 시간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2.
이 영화의 감독이 첫번째로 잘한 부분은 영화 시작 직후의 5분이다.
같은 장면을 다양한 시각에서 반복하면서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기법은
참신하진 않았지만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점만을 정확하게 드러내면서
이 영화가 갈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길을 분명하게 완주했다)



3.
댄이 기타 반주의 단촐한 노래 속에서 수많은 소리를 함께 듣는 장면은
정확하게 편재를 이해하고 있는 감독의 표현법이었다.
편재라는 것은 밖에서 오는 영감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영감도 아니며
그렇다고 나만에 국한된 생각도 아니다.
내가 접하는 모든 세계를 내 식으로 고려해서 그림을 짜맞추는것.
감독은 첫 장면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영화가
인간의 편재에 대한 이야기임을 보여줬다.



4.
그 뒤로는 여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사실 댄은 서문용 일 뿐이었지 감독이 다루고 싶은 주인공은 그레타였기 때문이다.
사실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불분명했다.
극의 전개에 해당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지만,
정확한 갈등 요인은 드러나지 않았고
감독이 두번째로 잘한 점은, 지루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좋은 음악으로,
아니 좋은 노랫말로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감동을 전달하는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노래들은 모두 가사가 정말 좋다.
문학성도 있고 운율도 좋으며 그레타는 그저 그렇지만 데이브의 노래 실력은 끝내준다.
(마룬파이브 짱짱맨)
특히 헤어진 후 전화로 욕하는 노래를 하는 부분은 정말 최고였다.



5.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데이브가 그레타에게 돌아오겠다고 하는 부분부터이다.
탑스타가 된 데이브가 주변에 일하던 매력적인 여성과 바람난다는 설정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고, 취향에 따라 분노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이야기를 끌고간 감독한테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런데 감독은 데이브를 되돌려놨다.
마치 그 이전에 그레타와 열렬하게 사랑할 때처럼.
아니 그의 사랑은 더욱 공고해져서 이제는 그와 그레타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이런 데이브의 사랑은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도 점점 더 강화되어서
데이브는 그녀의 말대로 음악적인 고집까지도 꺾는 모습을 보여준다.



6.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면.
그렇게 탑스타가 되었음에도 자신의 음악적인 고집까지 꺾어가며 그레타를 부르는 데이브를
그레타는 울면서 뒤로 한다.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면서도 웃으면서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동안 감독이 꽁꽁 숨겨왔던 메인 펀치를 얻어맞고 만다.
그레타를 클로즈업 하는 그 10초 남짓한 시간에 관객은 주마등같이 머리가 돌아가며
아무 대사 없는 장면임에도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을 머리속에서 듣는다.
그리고 그 울림은 대사를 통한 어떤 문장보다도 강렬하게 가슴에 아련함을 새겨 넣는다.



7.
그레타는 자신의 음악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밴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어설픈 상업성에 단호히 대응했고
아무리 연인이어도 음악의 좋고 싫음, 잘과 잘못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음악 세계는 독창적이며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밴과 같이 편재가 강력한 인물이다.

반면에 데이브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기획사에서 섭외가 들어온 사람이 데이브이다.
그레타와 같이 음악작업을 하는데도 데이브가 러브콜을 받는 부분은 데이브의 음악이 가진 대중성을 시사한다.
그는 기획사와 계약한 뒤로도 아무런 마찰없이,
락스타 라는 이름하에 일어나는 철저한 협업과정과 음악가에 대한 관리를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소화한다.
(투어 중에 연애하는거 보소)
덕분의 그의 출세 가도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음악 세계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부분은
그레타와 다시 만나서는 조용한 느낌의 그레타 곡을 신나게 편곡해서 들려주는 부분이다.
분명하지 않은가?
그는 음악적 고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무대를 사랑하고 더 많은 관객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자신이 무엇을 노래하고 무슨 곡을 만드는 지는 관심 밖인 것이다.
그는 상관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8.
사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무대로 올라가 같이 노래하며 데이브와 멋진 재회를 할거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끝날 시간도 다되었으니,
이제쯤 딱 올라가서 감동의 노래 부르고 키스하면서 빰~ 하고 대미를 장식하면 얼마나 깔끔한가.
하지만 그레타는 울면서, 그러면서도 웃으면서 데이브를 떠난다.

그레타와 데이브는 데이브의 변심 때문에 갈라졌었지만
데이브의 마음이 돌아온 이후에도 그 관계가 복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레타와 데이브의 신뢰관계가 깨져서?
연인사이의 신뢰관계라는 것은 한번깨지면 다시 붙지 않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생각하지 말자. 진정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그거겠는가.
감독이 그런 연애의 특성을 보여주려고 120분 동안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일까.

데이브의 마음은 돌아왔지만 그들의 관계는 돌아오지 않은 이유.
그것은 그레타의 깨달음이다.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사랑받으며 너무나도 멋지게 노래를 하고 있는,
그것도 자신이 요구한 편곡 그대로를 소화하고 있는 데이브가 너무나도 빛나기 때문에
더 가슴깊이 박히는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다.
그레타는 한순간도 음악적인 고집에 대해서 타협한 적이 없다.
그녀는 앨범 작업과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자신의 음악적인 방향성은 반드시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편재의 화신인 것이다.
그런데 데이브는 어떤가.
그는 그가 만든 편곡을 포기하고 그녀의 편곡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런데도 너무 잘부른다. 그런데도 그의 앞에 있는 수많은 관객들은 그를 사랑하고
그는 그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만큼 그녀의 곡을 빛나게 불러낸다.

그 모습은 그녀에게 하나의 벽이다.
그녀의 편재와 그의 상관이 절대 섞일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무언의 선언.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사람이고 받아야할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그녀와 같이 편재로, 예술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빛나고, 그가 가는 길은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평가절하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누가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상관으로 음악을 하지 않는 그녀가 보고도 알수 있을 정도로 빛나고 있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런데도 부럽지 않다.'

만약에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데 그녀의 마음속에서 부러움이라는 마음이 일어났다면
그녀는 그를 떠나지 못한다.
그녀는 그토록 빛나는 그를 통해 자신의 바람을 투사하고 그의 옆에서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를 뛰어 넘으려고 노력하고 조언도 받으면서,
서로 적이면서 라이벌인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데이브에게 등을 돌리는게 가능했던 이유는
정말 빛나는 그를 보면서도 한치의 부러움이 일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가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가는 삶의 지향점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 라는 것.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인기와 팬들, 돈과 명예를 쥐어주면서 단지 하나 음악적인 고집을 꺾으라고 한다면
자신은 자기의 음악적인 소신을 지키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거부할 것이라는 확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그의 길이, 음악적 성공이 부럽지 않았기 때문에 등을 돌려 떠난 것이다.

또 만약에 그녀가 그녀와는 다른 그의 길을 걷는 그의 무대가,
그의 고집을 꺾고 그녀의 곡을 부르면서도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이
최고로 멋지다고, 그의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은
그녀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웃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자기 음악적 고집도 없는 새끼 하면서 반쯤은 무시하고 반쯤은 실망한채로 그냥 공연장을 나왔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가 가는 길이 음악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면
다시말하면, 그녀의 기준으로 봤을때 독창적이지도 않고 색깔도 없는 그의 음악적 퍼포먼스를 보면서
자신이 그 길에서 앞서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를 얕잡아 보고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울면서도 웃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를 떠나 나온 행위는
그의 모습이 그녀와는 다른 길임에도 정말 멋있고 빛나고 있지만서도
그녀가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은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그녀가 가고 싶지는 않았다는 점.



9.
처음 그녀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을 보면
그녀는 막연히 그와의 음악적 교류에서 오는 기쁨과
성공에 대한 기대를 혼재해서 갖고 있었다.
데이브의 성공에 따른 호화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음악가인 자신이 커피를 나르면서 심부름을 하면서도 뉴욕에 머무르면서
그녀는 점차 자신이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데이브가 떠나고 밴을 만나면서 그녀의 불안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간다면 그것이 곧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진정한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 곧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음악적 세계를 지켜나가는 길과 음악적으로 성공하는 길은 완전히 반대로 뻗어있는 길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밴이 알려주는 부분이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음악시장에서 자신이 듣는 음악적 재능을 발굴하는 것과 음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임을.
그럼에도 음악적 재능을 발굴하기를 고수하는 그는
상업적인 음악 알고리즘에서는 배척당하면서도 아티스트의 음악적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듀싱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 상관적인 음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편재를 고집하면서 굴러온 그는 그만큼 수완가였다는 것이다.

밴과의 작업에서 그녀는 오롯이 행복함을 느꼈다.
양갈래로, 서로 반대로 뻗어있는 두 길에서 그녀의 길이 어느 쪽인지가 분명해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싸구려 작업여건으로, 지원받지 못하고, 성공을 보장받지 못해도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이 세상에 구현해 내는 과정이 너무 즐거운 사람임을 스스로가 체감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돌아왔다.

그는 진정 이 세상이 원하는 롹스타였다.
롹스타는 절대 혼자서 작업해서는 될 수 없다.
한번의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스탭들의 작업이 필요하고
더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스탭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녀에게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스탭들의 요구도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빛나길 원하는 그에게는 당연한 협조요청이고
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는 대중영합적인 편곡도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길 원하는 그에게는 절실한 음악적 노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틴스타를 꿈꾸고 롹스타를 꿈꾸지만
그는 그 중에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은 멋진 재능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아직 그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과 전혀 다른 길이며
음악적 노력이 곧 성공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그녀였으면 모르거니와
성공을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위해 노력하고 싶은 그녀가 그의 곁에 머무른 다는 것은
반드시 서로가 상대가 가는 길을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0.
그렇게 멋진 그였지만
그녀는 부럽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길을 올곧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더 멋있고, 그녀가 더 음악적 깊이가 있는 그런
어느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서 우와 열로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진짜 비교 불가능하게 '다른' 길임을 감각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우월감에도 열등감에도 빠지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진짜 멋진 결론이다.
감독이 보여주는 그 예술성과 다른 것들과의 대립, 그 대립을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 세련됐다.
보통은 한쪽이 낫고 한쪽이 못하다는 비교론적인 결론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감독이 보여주는 그 두 세계의 공존하는 경지라는게 가히 놀라운 정도의 이해도를 보여준다.
이건 감독이 상관과 편재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그려낼 수 없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묘사는 편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줬지만
편재만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면
데이브를 그렇게 멋지게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데이브가 정말 멋지고 데이브에 환호하는 관객들의 열정이 진짜배기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이렇게 대단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상관적인 뮤지션과 그런 화려한 무대에 열광하는 관중들 모두 음악 세계를 풍성하게 해주는 중요한 주체들이다.
윤종신이 엔터테이너스에서 한 말이 백번 옳다.
'진짜 나쁜건 너같은 놈들이야. 뮤지션이랍네 하는 것들. 어디 음악 지내 맘대로 만들어놓고 안팔리면 음악시장 썩었다고...'

노래는 발성이 아니고 음악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시인의 글은 그저 일기일 뿐이고
들어주는 사람 없는 노래는 그저 흥얼거림일 뿐이다.
시와 문학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음악은 반드시 듣는 사람을 전제로 한 사회적인 행위일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노래에 담아내는 것이 가치있는 것과 동등하게
듣는 사람이 더 듣고 싶어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도 가치있는 방향성이다.
이 두가지 가치가 얽힌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 바로 이 영화, 비긴 어게인 되시겠다.

정말 멋진 영화였어.
별 네 개 반은 이 영화를 주기 위해 요 몇년간 아껴뒀나 보다.
영화 다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감독 찾아가서 안아주고 싶었음.



p.s.
하나더 마음에 드는 부분을 꼽자면
밴과 그레타가 이어폰 꼽고 돌아다니는 애뜻한 장면에서 바로 이어지는 스킨쉽,
그리고 공연장을 뒤로하고 나온 그레타의 눈에 보인 밴과 아내의 관계 회복.
이 두 장면이다.

서로 이 어려운 뉴욕에서의 상황속에서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세계를 회복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을
어설픈 남녀관계로 엮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네 어쩌네 운운하면서
뽀뽀하고 자고 난리 쳤다면 그건 정말 감독이 하고자하는 깊은 주제를 흐리는 최고의 악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마음인지라
공연장을 뒤로하고 나온 그레타의 헛헛한 마음은
그 전날 음악적 치유를 공유한 밴에게로 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감독은 뻔히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밴과 아내의 키스 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을 보는 그레타의 눈도 오묘한데,
'슈바 저 남자한테 가려고 했는데 아 저 남자도 가정으로 돌아가야지, 추..축하해요'
하는 뭐랄까 나쁜 충동을 급히 자제하는 초등학생 같은 느낌?
그레타의 미련에 여지를 없애버리는 감독의 희극적인 충동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출 때문에 그레타의 음악적 결단이 훨씬 더 빛났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이 없었다면
'자기 음악적 결단을 하는 아티스트의 이야기 멋지긴 한데 솔직히 나라면 저 상황에서 누구라도 찾아가서 울고 싶을것 같은데..'
처럼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못하는 여지를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헛헛한 순간에 밴과 그의 아내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감독의 재치에
관객들은 '슈바 ㅋㅋㅋㅋㅋㅋ'를 외칠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진짜 살짝 욕나옴 ㅋㅋㅋㅋㅋ
그만큼 그레타에 몰입하기 쉬웠다는 말.


덧글

  • 핸슥 2014/11/30 23:04 # 삭제 답글

    같은 영화를 봐도 이렇게 감상의 고저가 차이가 나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 귀란이 2014/11/30 23:55 #

    배려없이 쓴 글자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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